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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호 수로에 대해서

비와호 수로의 역사

물의 은총을 교토로
비와호 수로의 건설의 시작

비와 호의 물을 교토로 끌어 오는 것은 옛날부터 교토 사람들의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토지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도면을 작성하고, 긴 터널을 뚫을 만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3대 교토부지사에 취임한 기타가키 쿠니미치(北垣国道)가 비와호에서 물을 끌어올 계획을 실천하였읍니다.
기타가키는 에도 막부 말기의 전재와 메이지유신의 도쿄 천도로 인해 쇠퇴한 교토를 부흥하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되는 '비와호 수로'의 건설을 계획했습니다.

제1수로 제2터널 동쪽 입구에 동문 공사(메이지 21년, 1888년)

활약 인물 소개

기타가키 구니미치

1836 - 1916
메이지유신 직후 도쿄로 천도한 이후,급속도로 쇠퇴한 교토의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근대화 정책에서 큰 공로를 쌓았습니다.
이를 가장 대표하는 것이 비와호 수로의 계획과 건설입니다.
이 외에도 교토상공회의소의 설립, 교토-미야즈간도로 건설, 제3고등학교의 유치 등이 있습니다.

다나베 사쿠로

1861 - 1944
비와호 수로의 건설 주임기사로서 기타가키지사가 등용한 인물인 그는 당시 코우부대학(현재 도쿄대학공학부)을 막 졸업한 21살이었습니다.
당시 큰 토목 공사는 전부 외국인 기술자가 설계 감독을 맡았지만, 비와호 수로 건설은 다나베 사쿠로(田邉朔郎)를 포함한 순수 일본인의 손에 의해 건설된 일본 최초의 토목 공업입니다.

제1수로의 건설
수원의 확보로 교토에 활기를 되찾아오다

제1수로 건설의 목적은 당초에 공업 용수, 운수, 화전 관개수, 도정용 물레방아, 소방수, 상수, 하수 총 7개였지만, 토목 기술자인 다나베 사쿠로가 미국에서 수력 이용법을 시찰했을 때 본 수력 발전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제1수로는 메이지 23(1890)년에 완성했습니다. 완성 후 제1수로의 이용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제1수로 제1터널

제1수로 이용법

1

전기 사업

게아게 발전소가 일본 최초의 산업용 수력 발전소로 건설되었습니다.
비와 호의 물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키거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동력으로 사용했습니다.

2

운하 사업

운하를 굴착해, 오츠, 후시미, 오사카 사이에 쌀, 석탄, 목재, 석재 등을 배로 운반하였습니다.
또한,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도 많이 출항 했습니다.게아게와 후시미 스미조메는 높낮이 차이가 있어서 인클라인을 설치하여, 견인차로 배를 이동시켰습니다.

3

수력 사업

교토 고쇼와 히가시혼간지에서는 방화용으로 수로가 이용되었으며, 별장과 공원에 물을 끌어 와 연못과 작은 천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도정과 방적, 신동 등에도 이용했습니다.

제1터널의 공사에 관해서

제1수로의 건설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당시 일본 최고 길이의 터널이었던 제1터널(2436m)의 공사였습니다. 지금까지 공사를 위해 만든 제1수갱(47m)과 제2수갱(20m)이 아직 현존합니다.
또한, 통선 루트 사이에는 4개의 터널이 있으며, 모로와 터널을 제외한 3개의 터널 동굴의 입구에는 '편액(扁額)'이라고 불리는 돌로 된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모두 메이지를 대표하는 정치가들이 적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물건입니다.

제1터널에 걸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편액 '키쇼반센(気象萬千)'

제1터널

메이지 19년경 촬영(타나베가 자료)

수로 제1터널 단면

제1터널 제1수갱

제1터널 제2수갱

제2수로의 건설
비와호 수로 또 다른 발전, 상수도와 수력 발전

메이지 30년대에 들어서, 제1수로의 유량으로는 매년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하수에 의존한 식수의 품질과 양에 모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2대 교토시장 사이고 기쿠지로(西郷菊次郎)는 3대 사업(제2수로 건설, 상수도 건설, 도로 증축 및 전기 궤도 부설)을 실시해, 제2수로는 이 3대 사업의 중심으로 메이지 41(1908)년에 착공하여, 메이지 45(191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제2수로의 굴착과 함께 유량이 증가하여, 제2기 게아게 ・에비스가와 ・스미조메 3개의 발전소도 신설되어 발전량이 증가했습니다. 이 전기로 인해 새롭게 넓힌 간선도로에 시영 전차를 운행하고, 시내에 불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45(1912)년에는 제2수로에서 물을 끌어오는 게아게 급수장이 완공되어, 교토시의 수도 사업이 탄생했습니다.

메이지 45년 촬영

활약 인물 소개

사이고 기쿠지로

1861 - 1928
메이지 37(1904)년 10월, 42세로 2대 교토시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메이지 44(1911)년 7월까지 재임기간 7년 동안 직접 지휘한 사업은 많지만, 특히 교토의 근대개혁을 추친하고, 기초를 다진 3대사업(제2수로의 건설, 상수도 건설, 도로 증축 및 전기궤도 부설)은 규모, 공사 비용 면에서 봐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대규모 공사였습니다.
이러한 사업 추진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이 공사는 도시 백년의 기초를 세우는 것이다. 후세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견디고, 우리들이 완성해야 한다.' 라며 호소하며, 굳은 결의를 나타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아들.

수로 사업의 완성
교토 역사를 지탱하는 비와호 수로

다양한 사용법으로 지역의 중심이 된 물

풍부한 물의 흐름은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고 윤택하게 했습니다.
주운, 물레방아의 동력, 화전 관개, 소방용수 같은 역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수량은 다양한 용도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정원으로 물 끌어오기.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별장 무린안(無鄰菴)을 시작으로 난젠지(南禅寺) 주변에는 세이류테이(清流亭), 헤키운소(碧雲荘) 등 넓은 별장이 생겨, 수로의 물이 흐르는 회유식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헤이안진구(平安神宮), 마루야마공원(円山公園), 현재 교토국립박물관 마루야마공원 정원에도 수로의 물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수영장과 선박 대기장을 활용한 유영장도 도처에 생겨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에비스가와 선박 대기장은 교토답수회수영학원(京都踏水会水泳学園)에서 활용하여, 75년간 총 50만명 이상이 수강했습니다.
교토답수회는 올림픽 선수도 배출했으며, 현재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옛 별장 무린안

역사 유산으로의 비와호 수로

비와호 수로는 인공 수로지만, 계절마다 운치를 자아내는 경관 등은 시간이 흐르며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서 활용 되었습니다. 쇼와 47년에는 수로 분선의 냐쿠오지(若王子) 부근이 '철학의 길'로 정비되었으며, 현재는 벚꽃 명소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1수로 제3터널 동쪽 입구

헤이세이 8년에는 비와호 수로 관련 시설 12개소가 국가의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헤이세이 19년에는 비아코소스이, 비와호 수로 기념관 소장물, 난젠지 수로각, 게아게 인클라인, 게아게 급수장, 게아게 발전소가 경제산업성에 따른 근대화 산업유산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비와호 수로와 그 관련 시설은 교토의 근대화의 발자취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